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미리 확보한 여동생 뇌조직 샘플 활용…빈 라덴 사체 DNA 검사

미군 특수부대가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후 그의 신원을 확인하는데 빈 라덴의 여동생 DNA 샘플이 동원된 것으로 밝혀졌다. 2일 ABC방송에 따르면 미군 특수부대가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에 소재한 빈 라덴의 은신처를 급습해 치열한 교전 끝에 빈 라덴을 사살하고 그의 시신을 아프가니스탄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DNA 테스트를 통해 그의 신원이 빈 라덴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방송은 빈 라덴의 여동생 가운데 한 명이 보스턴에서 뇌종양으로 숨졌으며, 정보당국이 훗날 빈 라덴의 신원을 확인해야 할 경우에 대비해 여동생의 뇌세포 조직에서 DNA를 확보해두고 있었다고 전했다. 국방부는 빈 라덴의 가족 몇 명의 DNA를 이용해 빈 라덴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밝혔으나 DNA 대조에 동원된 가족이 누구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국방부는 또 DNA 테스트가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는지도 공개하지 않았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일밤 빈 라덴의 사망 사실을 공식 발표할 수 있었던 것은 DNA 테스트 결과에 대한 확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AP통신은 또 당국자들이 얼굴의 고유한 특징을 일치시켜 신원을 확인하는 기법인 '얼굴 인식(facial recognition)' 기법을 통해서도 빈 라덴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2011-05-02

빈 라덴 피살된 뉴스 사진은 '가짜'…2년 전 인터넷 떠돈 사진 각국 보도 망신살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군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된 이후 2일 파키스탄 TV를 통해 공개된 빈 라덴의 시신 사진을 놓고 진위 논란이 일고 있다. 파키스탄 TV와 이 방송이 내보낸 화면을 캡쳐해 자사 웹사이트에 올린 외신들은 시신 사진이 '가짜(왼쪽 사진)'라며 철회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파키스탄 TV들이 방영한 화면 속의 남자는 빈 라덴의 모습과 매우 닮았으며 이마와 왼쪽 관자놀이 주변에 핏자국이 넓게 묻어 있고 오른쪽 눈은 감겨 있으며 치아가 보일 정도로 입은 벌어져 있는 모습이었다. 파키스탄 GEO TV의 라나 자와드 이슬라마바드 지국장은 이날 AFP통신에 "그 사진은 2009년에 인터넷에 올라와 있던 가짜 사진"이라고 말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도 이 사진을 인터넷에 실었다가 나중에 '가짜' 사진이라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파키스탄 방송에서 보도한 빈 라덴의 시신과 영국 신문들이 웹사이트에 실은 사진은 가짜"라며 "이 사진은 2년 전 인터넷에 떠돌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2009년 4월29일 중동의 한 온라인 매체(www.themedialine.org)가 처음 실은 사진으로 당시 편집자는 이 사진이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이 가짜 사진은 1998년 찍힌 빈 라덴 생전사진을 바탕으로 한다고 덧붙였다. 이 생전 사진은 로이터 통신에 의해 보도된 바 있다. 영국의 데일리 메일 텔레그래프 등도 이 사진을 웹사이트에 실었다가 나중에 철회했다. 한편 파키스탄 GEO TV는 이날 아보타바드에 있는 빈 라덴의 관저가 화염에 휩싸여 있는 모습을 처음 방영했다.

2011-05-02

테러와의 전쟁 '임무 완수'…아프간 전쟁 끝나나?

2001년 9.11 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군 특수부대에 의해 사살됐으나 알카에다 조직이 심각한 타격을 입지는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2일 제기됐다. 미국외교협회(CFR)의 제임스 린지 부회장은 이날 협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빈 라덴 사망 이후 남은 7가지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향후 알카에다의 운명 등을 전망했다. 그는 빈 라덴의 죽음으로 안심할 수도 없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득을 볼 것도 특별히 없다고 대체로 부정적 전망을 내놓으면서도 "테러리스트들에게 자신의 범죄에 대해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다음은 린지 부회장이 전망한 빈 라덴 사망 이후 제기될 수 있는 7가지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이다. ▶알카에다와 테러리즘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인가 =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알카에다는 이미 오래전 중앙집권적인 조직운영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빈 라덴은 '실질적 지도자(mastermind)'라기보다는 '명목상 최고인물(figurehead)'이었고 실제로 최근의 테러공격은 독립적인 알카에다 조직이 자체적으로 기획한 것이었다. ▶상징성도 없앨 수 있나 = 오바마 대통령은 빈 라덴을 알카에다의 지도자이자 상징이라고 말했으나 사람은 죽었겠지만 상징성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빈 라덴은 죽은 이후 이른바 성전주의자에게 영향력을 더 미칠 것이다. ▶아이만 알-자와히리는 어디에 = 빈 라덴의 사망으로 알카에다의 브레인으로 불려온 알자와히리가 미국의 지명수배 명단에서 최고 거물의 자리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2008년 파키스탄에서 미사일 폭격으로 부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의 경력으로 미뤄 앞으로 테러 공격을 기획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파키스탄은 미국의 파트너인가 = 오바마 대통령은 '파키스탄의 협조'를 언급했으나 백악관은 이번 작전을 파키스탄 정부에 사전에 알리지 않았고 파키스탄군도 작전에 동참하지 않았다. 더욱이 빈 라덴이 파키스탄 수도에서 겨우 40마일 떨어진 곳에 은둔하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양국 동맹관계에 의문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끝내도 되나 = 빈 라덴의 죽음은 오바마 대통령에게 아프간 주둔군의 철수를 명령할 수 있는 정치적 여지를 준 것으로 평가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동안 아프간전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알카에다의 괴멸을 강조해 왔기 때문에 빈 라덴의 사망으로 성과가 달성됐다고 자신할 수 있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이득은 = 최근 들어 하락추세에 있는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앞으로 수주일간 이번 일로 높아질 가능성이 있으나 오래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초당적 분위기가 이어질까 = 존 베이너 하원의장 등 공화당 인사들이 빈 라덴의 사살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을 칭찬하고 있지만 이런 분위기가 계속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여러가지 이슈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골은 너무나 깊기 때문에 빈 라덴의 죽음이 이를 메우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신복례 기자

2011-05-02

네이비실·CIA 탄 헬기 4대 급습…빈 라덴, 교전 중 머리에 총 맞아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경호원들 로켓포 쏘며 격렬 저항 작전 40분 만에 "미션 컴플리트" 2일 새벽 1시쯤(현지시간) 파키스탄 북부의 가지 공군기지에서 4대의 미군 헬기가 이륙했다. 헬기에는 미군 엘리트 특수부대 네이비실의 대원과 중앙정보부(CIA) 및 파키스탄 군정보국 요원을 포함 모두 20여 명이 타고 있었다. 이미 파키스탄에 들어와 있던 네이비실 대원들은 오사마 빈 라덴이 은신한 것으로 추정되는 군사.휴양도시 아보타바드의 저택과 비슷한 구조의 건물에서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 훈련까지 마쳤다. 새벽 1시30분쯤 아보타바드의 은신처로 미군 헬기들이 날아오자 빈 라덴의 경호원들은 지붕 위에서 로켓포와 자동소총을 발사하며 격렬히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헬기 1대가 추락했다. 방탄복을 입은 네이비실 대원들이 건물 진입을 시도하자 경호원들은 격렬히 사격을 가했다. 하지만 미군 최정예 특수부대원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경호원들은 하나 둘 총을 맞고 쓰러졌다. 저택의 가장 은밀한 방에 숨어 있던 빈 라덴은 무기를 들고 저항하다 머리에 총을 맞고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 통신 등은 미 특수부대의 임무가 빈 라덴 생포가 아닌 사살이었다고 보도했다. 연방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총격전 과정에서 빈 라덴의 아들 1명을 포함해 남자 3명과 여성 1명이 사망했다"며 "사망한 여성은 빈 라덴의 인간방패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약 40분간 이뤄진 작전은 결국 빈 라덴의 사살로 끝이 났다. 네이비실은 빈 라덴의 시신 확인이 끝나자마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미션 컴플리트(Mission Complete.작전 완료)"라고 보고했다. 이상은 ABC방송이 전한 작전 상황이다. 연방정부가 빈 라덴의 은신처에 대해 '감'을 잡게 된 시점은 지난해 8월쯤이라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CIA는 이때 ISI를 통해 빈 라덴이 산악지대가 아닌 아보타바드의 3층짜리 저택에 숨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리고 수개월의 확인 끝에 올 2월 이 저택이 빈 라덴의 은신처라고 결론지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수차례의 국가안보팀 회의를 거쳐 지난달 29일 빈 라덴 사살작전을 승인했다. 전세계의 시선이 영국 로얄 웨딩에 쏠려있을 때였다. 등잔 밑 어두웠던 호화 은신처 산악지대 동굴 칩거 예상 깨고 수도 인근 휴양도시서 숨어지내 등잔 밑이 어두웠다.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는 산악 지형의 동굴이 아니었다. 그는 대담하게도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북쪽으로 50마일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도시 아보타바드에 있었다. 집도 산악지대의 험한 동굴이 아닌 13피트 높이의 콘크리트 담에 둘러싸인 가격 100만 달러 상당의 3층 대저택이었다. 파키스탄 육군사관학교에서 약 0.3마일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연방정부 관계자는 ABC방송에 "저택 주변에서 지역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집에서 나온 쓰레기를 태웠으며 저택엔 텔레비전 인터넷 전화가 없었다"며 "2005년 지어진 이 저택엔 출입구를 보기 힘들었으며 창문도 매우 높은 곳에 달려 있어 누군가가 숨어 있다고 확신했다"고 밝혔다. 빈 라덴은 2001년 9.11테러를 일으킨 후 그해 11월부터 아프간 산악지대인 토라보라의 동굴에 숨어 있다가 12월 미군이 토라보라를 급습하기 직전 몸을 피한 뒤 행적이 묘연했다. 지난해 10월 CNN방송은 NATO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빈 라덴이 알-카에다 파키스탄 북서변경의 일반 주택에서 파키스탄 군정보국(ISI)과 부족민들의 비호 아래 편안하게 지낸다"고 보도한 바 있다. 하지만 조 바이든 부통령은 지난해 12월 NBC방송과 인터뷰에서 "빈 라덴과 그 동료들이 아프간.파키스탄의 산악 지역에서 지낸다는 것이 우리 정보 당국의 일치된 견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파키스탄 당국이 빈 라덴을 비호해오다 최근에야 그의 소재를 미 당국에 알린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일고 있다.

2011-05-02

9·11후 대 테러전쟁 경과와 주요 테러사건 일지

미국이 1일 2001년 9.11 테러를 저지른 알-카에다의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국제사회가 벌이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은 10년 만에 중대 성과를 거뒀다. 다음은 9.11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중심으로 한 대 테러전쟁 경과와 주요 테러 사건 일지다. ▶2001년 9월11일 = 이슬람 무장 테러 단체인 알-카에다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납치된 4대의 여객기가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DC의 국방부 청사인 펜타곤에 충돌, 수천명이 사망한 테러 사건 발생. ▶2001년 10월7일 =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이 9.11 테러 배후로 지목된 알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인도를 거부함에 따라 미국과 영국군이 아프간 공습 시작, 조지 부시 대통령이 ‘항구적 자유’로 명명한 아프간전 개시. ▶2008년 11월26일 = 인도 뭄바이에서 자동무기와 수류탄으로 무장한 세력의 테러 공격으로 188명 이상 사망 ▶2009년 1월30일 =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직후 현재 아프간 주둔 미군은 3만6000명, 나토군은 3만2000명. ▶2009년 2월17일 = 오바마 대통령, 1만7000명의 아프간 전투 및 지원 병력 증파 승인. ▶2009년 6월9일 = 미 해병대 첫 파병, 1만명 아프간 주둔하면서 탈레반 소탕 작전에 투입. ▶2009년 10월 = 한달동안 58명의 미군이 사망하면서 아프간전 개전 이후 최대 사상자를 낸 달로 기록. ▶2009년 12월1일 = 오바마 대통령, 대국민연설을 통해 추가 파병 방침을 밝히는 새 아프간전쟁 전략 발표. ▶2010년 4월18일 = 이라크 알 카에다 지도자 아부 아유브 알-마스리, 아부 오마르 알-바그다디, 이라크 정부군 공격에 사살. ▶2010년 5월 = 알 카에다의 아프가니스탄 사령관이자 조직 서열 3위인 무스타파 아부 알 야지드, 미군의 무인 폭격 받고 사망. ▶2011년 5월1일 = 오바마 대통령, 오사마 빈 라덴 사살 발표.

2011-05-02

구 소련 아프간 침공때 결성…빈 라덴 자금·군사력이 바탕

☞ 알 카에다는 9.11테러의 배후인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끈 알-카에다는 1979년 소련(현 러시아)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였을 때 아랍 의용군으로 참전한 오사마 빈 라덴이 결성한 국제적인 테러 지원조직이다. 무슬림에 의한 국제 무장세력 네트워크로 이슬람 의용군(무자헤딘)이 연대한 조직이 기원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91년 걸프전쟁이 일어나면서 반미 세력으로 전환한 이 조직은 빈 라덴의 막대한 자금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파키스탄·수단·필리핀·아프가니스탄·방글라데시·사우디아라비아는 물론, 미국·영국·캐나다 등 총 34개국에 달하는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1993년 뉴욕 시의 세계 무역 센터 건물을 폭파했고, 케냐와 탄자니아의 미국 대사관폭파사건, 예멘 근해의 미함 콜 습격사건에 관여한 것으로도 파악되고 있다. 2000년에는 미국 세계 무역 센터 생물학무기 테러 사건을 벌였고, 2001년에는 9.11 테러사건으로 알려진 미국내 동시다발 테러사건의 배후자로 지목됐었다. 주요 목적은 이슬람 국가들의 영향력 확대이며, 이를 위해 다양한 국적의 테러조직과 연결해 3억 달러에 달하는 오사마 빈 라덴의 막대한 자금력을 이용, 각종 테러에 자금을 지원해 왔다.

2011-05-02

백악관 움직임 시간대별 정리…성명 예고부터 발표까지 '긴박했던 3시간'

오사마 빈 라덴 사살 발표는 미국의 대테러전쟁 만큼이나 긴박하게 진행됐다. 백악관의 특별 성명 예고부터 오바마 대통령의 빈 라덴 사살 발표 직후까지 급박했던 상황을 시간(LA시간)대별로 정리했다. ▶오후 7시9분: 백악관에서 오후 10시30분 특별 성명을 발표할 것임을 예고. 국가 안보와 관련된 안건이라는 정보가 백악관 소식통을 통해 공개됨. ▶오후 7시45분: 여러가지 추측이 나오는 가운데 CNN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빈 라덴의 사망을 공식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 ▶오후 7시55분: CNN에서 정부·의회 소식통을 인용, 정보당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사망한 빈 라덴의 사체를 확보했다고 보도. ▶오후 8시15분: 정부 고위 관계자가 CNN에 빈 라덴이 파키스탄이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외곽 지역의 맨션에서 특수부대 작전을 통해 가족과 함께 사살됐다고 밝혀. ▶오후 8시20분: 백악관 밖에 시민들 집결해 성조기를 흔들며 '유에스에이'를 연호하기 시작. ▶오후 8시35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오사마 빈 라덴 사망 발표 ▶오후 8시56분: 정부, 국내·외 외교청사에 대한 경계 태세 강화. 직후 국무부, "전세계 미국인 테러 주의할 것" 발표 ▶오후 8시59분: 미 특수부대가 빈 라덴을 사살한 장소가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로 확인됨. ▶오후 9시24분: 빈 라덴을 사살한 부대가 네이비실로 확인됨. 사살 작전은 40분간 진행됐으며 수 차례의 작전 훈련까지 했던 것으로 밝혀져. ▶오후 9시35분: 국무부, 해외 거주 미국민 "대 미국민 대상 폭력 행위 주의할 것" 발표 ▶오후 10시25분: 미 전역 테러주의보 발령 문진호 기자

2011-05-02

부시 "미국의 승리"…오바마에 축하 전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에 대해 "미국의 승리(victory for America)"라고 말했다. 지난 2001년 9.11 테러 직후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빈 라덴 '사냥'에 나섰던 부시 전 대통령은 1일 성명을 내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소식을 전해들었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나는 오바마 대통령과 함께 이번 임무를 위해 목숨을 내건 미군과 정보기관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면서 "우리는 그들에게 끝없는 감사의 뜻을 보낸다"고 말했다. 부시 전 대통령은 그러면서 "이 중대한 성취는 미국은 물론 평화를 갈망하는 전세계 모든 이들과 9.11 테러로 사랑하는 이를 잃은 모든 이들에게 승리"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또 "테러와의 전쟁은 계속 될 것"이라며 "오늘 미국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든 정의는 실현된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했다"고 덧붙였다. 부시 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 직접 전화를 걸어 축하의 뜻을 전했다고 CNN 방송이 보도했다. 또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9.11 테러와 알-카에다의 다른 공격으로 숨진 희생자 가족은 물론 우리 자손들을 위한 평화 자유 협력을 원하는 전세계 모든 이들에게 아주 중요한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2011-05-02

"정의가 실현됐다…테러와의 전쟁 최대 성과"

작전 상황 상세히 밝히며 시종일관 강한 어조 진행 "오늘 나는 미국민과 세계에 미국이 수천명의 무고한 남성 여성 아이를 살해한 책임을 지고 있는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리더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음을 보고한다." 1일 오후 8시35분(LA시간) 백악관에서 이뤄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성명은 10년에 걸친 미국의 대테러전쟁을 상징하는 만큼 시종일관 강한 어조로 진행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국경지역에서 파키스탄으로 도주했던 빈 라덴이 이날 미군 특수부대의 공격을 받고 교전 도중 사살됐으며 그의 시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9.11 당시의 상황을 회고한 후 "빈 라덴의 사망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가장 중대한 성과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하고 "정의가 실현됐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작전 과정에서 미군이나 민간인의 피해는 없었으며 미 정보 당국이 지난해 8월 빈 라덴의 파키스탄 내 은신처에 관한 믿을 만한 단서를 확보하고 이를 추적해왔으며 지난 주에 빈 라덴의 제거 작전을 단행할 충분한 정보가 확보됐다고 판단 작전 개시를 승인했다"며 작전 상황을 대체적으로 상세하고 밝혔다. 또 파키스탄 정부와 그간 대테러 활동을 위해 정보를 제공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 밖에 오바마 대통령은 빈 라덴의 사살이 이슬람권과의 마찰로 이어지지 않도록 빈 라덴을 "대량 학살자"로 규정하고 "그의 제거는 절대 이슬람과의 전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2차례에 걸쳐 강조했다. 오바마는 빈 라덴의 사망으로 테러와의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며 빈 라덴의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가 미국을 향한 공격을 계속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진호 기자

2011-05-01

거리에서 야구장에서…미 전역 환호의 도가니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1일 밤 미 전국이 환호의 도가니로 변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특별성명을 통해 빈 라덴의 사망을 공식 발표하는 동안 휴일이 끝나는 자정이 가까운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워싱턴D.C.의 백악관 앞과 뉴욕의 그라운드제로에는 시민들이 모여 성조기를 흔들며 '유에스에이(USA)'를 연호했고 주요 시내 중심가에도 거리 곳곳에 군중이 몰려나와 빈 라덴의 사망을 축하했다. 프로야구장에서도 환호의 함성이 터져나왔다. 모든 방송은 정규방송을 중단한 채 빈 라덴의 사망 소식을 긴급 타전한 뒤 오바마 대통령의 성명발표를 실시간 중계했다. 또 빈 라덴의 일생과 9.11 테러 등을 담은 특별 방송을 편성하기도 했다. 조지 W. 부시 정부 시절 백악관 비서실장을 지낸 앤디 카드는 "오늘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원하는 미국과 전세계에 '멋진 날(a terrific day)'"이라고 평가했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도 성명을 내고 미국인들은 빈 라덴을 사살할 것이라는 약속을 지켰다면서 "그의 죽음은 당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든 이들에게 평안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에도 알-카에다 지도자의 사망을 알리는 메시지와 축하글이 넘쳐났다. 한편 남가주 한인사회는 이날 오후 8시쯤 빈 라덴의 사망소식이 알려지자 사실여부를 확인하는 전화가 언론사 등에 이어졌다. 한인 김모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 소식을 아들에게 들었는데 정말이냐"며 "9.11 이후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테러의 위협에 불안했는데 이제 한시름 놓을 수 있게됐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웹사이트에도 계속해서 빈 라덴과 관련한 속보가 업데이트 되면서 한인들의 접속이 폭주했다. 빈 라덴 사망과 관련한 기사에는 '빈 라덴의 사망이 사실이냐' '오사마가 사살된 다음엔 김정일인가 김정일 아무곳도 못 가겠네' '축제라도 해야겠다' 등 다양한 댓글이 달려 한인들의 높은 관심을 대변했다. 곽재민 기자

2011-05-01

오사마 빈 라덴은?…사우디 최대 건설사 사장 아들로 거액 상속

오사마 빈 라덴은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지도자다. 미국이 특히 빈 라덴 제거에 열을 올렸던 것은 2001년 9월11일 뉴욕과 워싱턴DC에서 일어난 일명 9.11 테러의 배후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빈 라덴은 1957년 3월10일 사우디아라비아 최대의 건설회사 사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에게 상속을 받은 수천 억 원의 재산과 도로 터널 건설 사업을 기반으로 또 다른 무장 테러세력인 알 무자헤딘을 지원하기도 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 때는 무자헤딘으로 전쟁에 참가하기도 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를 한 뒤에는 사우디로 귀국해 무자헤딘과 교류를 지속했다. 빈 라덴은 걸프 전쟁 때 이슬람교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의 미군 주둔을 못 마땅히 여기고 주둔을 허락한 왕실을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추방당한 빈 라덴은 아프리카 수단으로 향했다. 1996년에는 미국과 사우디의 압력으로 수단에서도 추방당해 아프가니스탄으로 입국하게 된다. 그러던 빈 라덴은 1998년 유대인과 십자군에 대한 성전을 선포하고 국제 이슬람 전선을 결성한다. 이후 "군인 민간인을 불문하고 미국인과 그 동맹자를 처단하는 것은 무슬림 개인에게 부여된 의무"라는 칙령을 발표하고 세계 각지에서 폭력 테러를 행해왔다. 특히 2001년 납치한 여객기를 세계무역센터 빌딩에 충돌시키는 전대미문의 테러로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후 미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돌입했고 대대적인 빈라덴 검거작전을 펼쳤지만 최측근도 알기 어려운 묘연한 행적 탓에 성과는 지지부진했다.

2011-05-01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